해외에서의 영향력을 높이며 국가재건 의지 꿈틀
해외에서의 영향력을 높이며 국가재건 의지 꿈틀
  • 심영섭 치학신문 편집인
  • 승인 2010.03.02 1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영섭 편집인 코너 … 유태인 이야기 (21)

▲ 심영섭 치학신문 편집인
[덴탈투데이/치학신문] 유태인비방대응기구(Antidefamination League ADL)는 20세기초 미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반유태주의에 대항 하면서 설립 된 조직이다. 1908년 독일태생 법률가 리빙스턴에 의해 시작 되었다.활동은 유태인도 일반 미국인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역할로 출발 했다.

편지쓰기에서부터 팜플렛 및 신문광고로 발전해 간다. 1930년대 ADL은 조직적인 대중운동이 되었고 반 유태인그룹들에 대한 정보수집활동이 필요 했다.그래서 때로는 탐정요원을 고용하기도 했다. 수집된 정보는 FBI나 언론에 넘겨졌다. 반유태주의자들은 ADL을 경멸하면서 무서워하고 있다.

유태인들의 생명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유태인들의 노력은 조직이 결성되기 전에도 존재 했었다.그 대표적인 예가 러시아에서의 유태인학살 고발조치였다. 뉴욕의 부유한 유태인들은 1892년 뉴욕타임즈(당시는 비 유태인 소유)를 움직여 그들의 비용부담으로 짜르체제의 잔학상을 취재토록 특파원을 러시아로 파견시켜 러시아의 반 유태실상에 관한 특집기사로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분노를 자아내게 하였다.

러시아에대한 미국유태인들의 보복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나타난다. 뉴욕의 투자은행가인 야콥쉬프는 자청하여 국제금융시장에서 전비 조달자금을 찾고 있던 일본의 전쟁펀드 발행을 보증하고 나섰다. 일본은 그 자금으로 신형무기와 군수물자를 구입해서 러시아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쉬프는 일본천황으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1911년에는 AJCongress가 최초의 강경한 유태인시위를 주도하여 상원으로 하여금 1832년 체결 되었던 미-러 통상조약을 폐기토록 하였다.

◆ 해외독립운동과 아랍전쟁

▲ 야콥쉬프-유태인을 학살한 러시아를 보복하기위해 러일전쟁중 일본을 도운후 일본천황으로부터 작위를 받는다.
유럽유태인들의 적극적인 시온운동에도 불구하고 미국유태인위원회(AJC)에 조차 반 시오니스트들이 많았다. 그런데 1912년 당시 미국 내에서 명망이 높은 변호사 브란데이스가 시오니스트로 가입 했다.

하버드법대 수석졸업자인 그는 윌슨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였다. 1916년 윌슨대통령은 그의 친구에게 대법관직을 수여 하면서 친구의 새로운 사업인 시오니즘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한 배경에서 윌슨대통령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소수민족들이 독립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민족자결주의 선언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편 팔레스타인에서는 1906년 러시아로부터 귀환한 벤구리온이 국가건설을 진두지휘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루스벨트대통령의 친구이자 유명한 랍비 와이즈 지도기를 맞아 다시 활기를 찾았다. 그는 루즈벨트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통하여 유태인의 구출과 재정착에 큰 도움을 받는다.

그는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드는 유태인들에 대한 현지 아랍인, 그리고 영국 통치군들의 심각한 저지를 피하기 위하여 과거 헤르츨이 고안 했던 우간다의 유태인 정착지 건설을 시도 했지만 실패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