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간호사들이 간호법 제정을 놓고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병원에서는 한솥밥을 먹고 있지만, 밖에서는 사생결단의 결투를 벌이는 형국이다.
야당인 민주당이 의사면허법과 간호법의 13일 국회 본회의 처리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의 마지막 국회 관문 통과를 위해 거의 매일같이 사활을 건 투쟁전을 전개하고 있다. 투쟁의 주무대는 여의도 국회 앞 주변이다.
간호계는 12일에도 국회 앞에 모여 간호법 처리를 압박했다. 간호사 단체인 간협과 간호법제정추진범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열린 ‘간호법 국회 통과 촉구 수요 한마당’에서 300명의 국회의원을 향해 여야 합의로 마련된 간호법 대안의 국회 통과를 요청했다. 이날 행사에는 현장 간호사, 간호대학생, 시민단체 등 주최측 추산 2만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간호법이 대통령 공약사항이자 4차례의 법안심사 과정에서 여야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가 합의하고, 국회법 제86조에 따라 합법적으로 의결된 법안임을 재차 강조하며 ‘간호법=부모돌봄법, 가족행복법’이라는 현수막과 손피켓을 들고 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수요 한마당’에는 현장간호사와 간호법범국본에 참여한 각 시민단체가 발언자로 나서 간호법 제정을 응원했다.
간호와돌봄을바꾸는시민행동 강주성 대표활동가는 “매년 우리나라는 간병 살인이 발생하고 있다. 간병이 필요한 사람은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도 돌봄이 이뤄질 수 있게 간호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국민과 우리 모두를 위해 간호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와 관련된 50여 직종이 모여 있다. 따라서 간호법 찬성은 간호인력 외에도 보건의료 50여 직종이 지지하는 것”이라며 “국민돌봄을 책임지고 있는 간호사를 위해 간호법 제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 의사 직역 중심주의를 깨서 국민에게 더 나은 좋은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한국정신장애연대 카미의 회장인 권오용 변호사,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신승일 위원장, 부산시보건교육연구회 손현경 이사 등이 나서 여야가 모두 약속한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6명의 현장 간호사들은 대한민국에 간호법이 필요한 이유를 설파하며 국회를 향해 한목소리로 간호법 통과를 호소했다.
제주도에서 왔다는 정지은 현자 간호사(14년차)는 “대한민국에서 간호사의 역할은 참 많다. 터미네이터가 되어야만 주어진 업무를 마치고 퇴근할 수 있다. 간호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 수도 주변국과 비교해볼 때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간호법 제정을 호소하는 건 간호사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간호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국민이, 지역사회 내 대상자가 건강해지고 그러면 대한민국이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건강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부디 간호법을 통과 시켜달라”고 호소했다.
간호계는 현장 집회뿐아니라, 대국민 선전전도 한층 강화했다.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 단체의 페이크 뉴스가 극에 달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간호사가 처한 현실을 영상으로 자체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는가하면,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왜곡된 내용이 많다며 예전보다 한층 강해진 어조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9일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이 대표적이다.
간협은 이 호소문에서 “의료계가 간호법 제정 반대를 위해 또다시 진료거부와 휴진을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겁박하는 패악질”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은 10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간호법 제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시점에 의사협회의 가짜뉴스와 비방이 도를 넘고 있다”며 “간호법은 결코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응급구조사 등 타 직역의 업무를 침해, 침탈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의사협회 이외에도 의료계 관련 단체들이 의사들의 주장에 동조해 간호법 반대에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거짓의 탈을 쓰고 명분없는 파업을 벌이겠다며 국민과 정치권을 겁하는 의협의 반헌법적인 행태 또한 민주주의를 테두리를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고 일갈했다.
“간호법 제정은 간호사의 ‘단독개원’으로 가기 위한 포석”
13개 의료 단체, 간호법 본회의 처리시 연대 총파업 돌입

대한치과의사협회 홍수연 부회장이 12일 국회 정문 앞에서 간호법 제정 저지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수연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간호법은 보건복지의료직역 간 갈등을 야기하는 법안으로, 타 직역에 대한 간호사의 업무 범위 침해가 가속화될 것이고 ‘원팀’으로 기능해야할 의료체계가 붕괴되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간호법의 본회의 처리 여부가 코앞에 닥치면서 의사협회를 비롯한 간호법 반대 단체들의 움직임도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의료 관련 1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보건복지의료연대와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간호법과 일명 의료인 면허 박탈법(의료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의결될 경우 연대 단식 투쟁과 함께 총파업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간호법이 다른 직역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간호사 한 직역만을 위한 법으로 종국에는 국민 건강을 해치게 하는 악법이 될 것”이라며 “법안의 제정은 어려우나 개정은 쉽기에, 추후 조항을 개정 하다 보면 간호사만을 위한 악법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씨앗 단계에서부터 싹이 트지 못하도록 국민 건강 수호를 위해 간호법 제정 자체를 저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간호법 제정이 간호사의 ‘단독개원’으로 가기 위한 포석”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간호법의 목적 조항은 향후 (간호법 개정을 통해) 간호사가 의사의 감독 없이 지역사회에서 단독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상정된 간호법으로 당장 단독개원을 하기는 어렵지만 기존 의료법 체계에서 간호법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다면 향후 법 개정을 통해 단독개원의 길을 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명하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서울시의사협회장)도 이필수 회장과 같은 우려를 전했다. 그는 “만약 간호법이 통과되면 언제든지 의료법의 개정 시행령 등을 통해서 간호사가 의사 지도 없이 의료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의사회 이윤수 대의원회 의장은 “의사들은 지금도 의료법에 의해 민·형사처분과 행정처분까지 이중 처벌을 받고 있다. 의사면허박탈법이 통과되면 병원급 의료기관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동시에 적용 받아 의사 면허가 박탈될 가능성이 크고, 향후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간호법과 면허박탈법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법안”이라고 강조했다.